첫 논문 회고 및 대학원 돌아보기
Thu Jul 03 2025

잘 지내셨나요? 저는 어떻게 보면 잘 못 지냈고, 또 어떻게 보면 잘 지냈습니다.

랩에 들어온 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연구 주제도 엎어졌다가 다시 시작해서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방금 막 rebuttal까지 끝내고 물 떠놓고 oral되길 기도하는 중... 리뷰 점수가 나쁘지 않음 뭔가 심상치 않음...!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순간을 겪은 것 같아 회고록을 쓰고 있는데, 블로그 글을 정말 오랜만에 쓰려니 어색하네요ㅎㅎ..

2년!
2년!

저는 학부 때는 (보안의 탈을 쓴) 컴퓨터공학과 웹 개발을 중심으로 공부했고, 그 사이에 회사에서 MLOps를 잠깐 하다가, 대학원에 와서는 로봇 소프트웨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다 코딩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대학생으로서의 공부와 대학원생으로서의 연구는 학문적으로도, 마음가짐 면에서도 너무 달랐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그런 차이를 잘 몰라서, 멋모르고 용감하게 덤볐다가 좌절도 많이 하고 멘탈도 많이 나갔어요. 특히 첫 연구 주제가 엎어졌을 때는 그만둘까 고민도 했지만, 꿋꿋이 버티다 보니 결국 괜찮아지더라고요. 이번 회고록에서는 대학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논문을 쓰기 위해 제가 가장 집중했던 점들을 몇 가지 적어 보려 합니다.

이야기꾼이 되자

연구실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과학은 발견의 행위이자 설득의 행위다”(Science is as much an act of persuasion as it is an act of discovery)라는 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와 실험 결과가 있더라도, 이를 듣는 사람(교수님, 리뷰어, 랩실 동료, 부모님 등)이 이해하도록 전달할 수 있어야 하죠. 연구 스토리에는 다음이 담겨야 합니다.

  1. 문제가 무엇인지
  2. 왜 중요한지
  3. 무엇이 어렵게 만드는지
  4. 기존 방법이 왜 실패했는지
  5. 우리의 방법이 왜 해답이 될 수 있는지

스토리가 탄탄하면, 논문은 그 내용을 학술적으로 옮겨 적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뚜렷한 스토리가 있어도 글로 풀어내기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첫 연구가 실패한 이유도 결국 커뮤니케이션과 스토리의 부재였던 것 같습니다. 뭔가 잘못돼 가는 걸 느끼면서도 고치지 못했던 건, 애초에 연구의 핵심 서사를 깊이 고민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부족함을 절감한 만큼, 이번 연구에서는 “이야기꾼이 되자”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되게’ 만드는 것

그다음으로 깨달은 것은, 무엇이든 되게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첫 번째 연구에서 제가 부족했던 부분이자, 두 번째 연구에서 박사님께 보고 배운 점이기도 해요.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검증이 느리면 소용없습니다. 구현, 최적화, 추상화 등 무엇이 필요하든 빠르게 해내야 합니다. 개발에서는 코드 확장성을 극단적으로 신경 쓰는 문화가 있지만(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연구에서는 확장성보다 속도가 더 중요합니다. 매주 교수님 미팅에서 “리팩토링했습니다”보다는 “새로운 실험을 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이 점이 개발자였던 예전의 저와, 연구자로서의 지금 제가 달라진 부분입니다.

좋은 문제를 고르는 것

다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꿈꾸지만, 정말로 좋은 문제를 고르려 노력해 본 적이 있을까요? 저 역시 “좋은 문제를 찾아야지”라는 말만 하고, 정작 중요한지 깊이 따져 본 적이 드물었습니다. “모델 구조를 바꿔서 성능이 올랐다”는 데 만족해 버렸던 것 같아요.

좋은 문제를 고른다는 건 결국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비슷합니다. 이 문제를 풀면 내 분야에 얼마나 큰 발전이 있을지, 내가 풀 수 있을지, 얼마나 걸릴지, 남들은 어떻게 풀고 있는지 등을 냉정히 따져야합니다. 두 번째 연구 주제를 정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가도 교수님 질문에 답을 못 하고 돌아온 적이 많았죠 ㅎㅎ.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사람이 미칠 것 같지만… 연구자는 좋은 문제를 풀수록 큰 보상을 받는 법이니까 견뎌야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아무튼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만약 논문이 붙으면 인스타에 자랑 좀 하고, 학회 참석 후기도 남길 예정입니다! 석사 졸업 후에는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회사에서 몸과 마음을 정비하려고 해요. 되도록이면 이 분야에 몸을 계속 담구고 싶고, 공부를 계속 하고 싶네요! 그동안 주위에 신경을 잘 못 쓰고 살았던 것 같은데, 기분이 나면 연락을 해볼게요. 사실 안바빠도 연락 잘 안하는거 다들 아시자나요. 여튼 기회가 되면 보아요 안녕!